
장부상에 기재된 숫자는 언제나 정직해 보이지만, 그것들이 한데 뒤섞여 '구조화(securitization)'라는 이름의 세례를 받는 순간 숫자는 교활한 생명력을 얻는다. 여기, 이름 모를 서민 1,000명이 각자의 생애를 담보로 빌려 간 1,000억 원의 부채 뭉치가 있다. 그들은 매달 성실히 7%의 이자를 상환하며 자신들의 콘크리트 안식처를 지키려 매일 애쓴다. 연간 70억 원의 이자 수익. 그것은 누군가의 땀방울이자, 누군가에게는 먹잇감이었다.
우리는 이 거대한 부채의 저수지를 세 개의 층으로 썰어냈다. 이른바 **CDO(부채담보부증권)**라 불리는 현대 금융의 연금술이다.
1. 가장 먼저 워터폴을 마시는 자, 시니어(Senior) 트랜치: 700억 원
"가장 먼저 배불리 마시고, 가장 나중에 목말라 하는 자들." 거대 은행과 연기금들이 이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안전을 원했다. 70억 원의 이자가 발생하면, 이들은 가장 먼저 자기 몫을 챙겨간다. 설령 1,000명 중 300명이 파산하여 원금의 30%가 증발한다 해도 이들의 700억 원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그 대가로 이들은 고작 3%의 낮은 수익률에 만족하며, 자신들이 난공불락의 성벽 안에 있다고 믿었다. 700억의 3%에 해당하는 21억을 마시고 나머지 49억을 내려보낸다.
2. 기회주의자 메자닌(Mezzanine) 트랜치: 200억 원
"경계에 선 기회주의자들." 시니어의 발밑이자 주니어의 머리 위, 그 모호한 중간 지대다. 하이일드 펀드와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이곳에 200억 원을 던졌다. 시니어가 배를 불리고 남은 이자 중 일부를 가져가며 10%의 수익을 노린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연체율이 10%를 넘어서는 순간, 이들의 성벽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위태로운 풍요다. 시니어가 흘러보낸 49억에서 200억의 10%인 20억을 마시고 흘러보낸다. 남은 건 이제 29억
3. 주니어(Junior) 트랜치: 100억 원
"벼랑 끝의 도박사들." 가장 위험하고, 가장 탐욕스럽다. 이들은 100억 원을 넣고 나머지 900억 원이 감당하는 위험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만약 연체자가 거의 없다면, 시니어와 메자닌에게 주고 남은 모든 '초과 수익 29억'이 이들의 주머니로 쏟아진다. 수익률은 29%. 하지만 그것은 피의 대가다. 단 10%의 부실만 발생해도 이들의 100억 원은 순식간에 0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당신은 이 레버리지 도박판에 베팅할 수 있는가?
창밖의 뉴욕 월스트리트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이 꿈틀거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트레이딩 플로어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000명 중에 설마 100명이 한꺼번에 망하겠어?" 누군가 비웃듯 내뱉었다.
그러나 통계학의 오만함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비가 오면 옆집 사람만 젖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젖는다는 것을.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농장 노동자와 플로리다의 은퇴 노인이 동시에 파산할 수 있다는 '상관관계'라는 괴물을 그들은 계산기에 넣지 않았다.
그동안의 수익률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1,000가구의 몰락이 독처럼 퍼지고 있었다. 시니어는 안도했고, 메자닌은 주시했으며, 주니어는 기도했다. 그리고 2008년의 어느 아침, 마침내 저수지의 둑이 터졌다.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주니어부터 차례대로, 숫자로 된 인간의 욕망들이 수장되기 시작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2008년 모기지론으로 제국의 피바람이 불었다면, 다음은 x가 될 것이다. 당신에게 x는 무엇인가?